'외로움'이라는 느낌은 왜 일어날까요? 이성의 부재에 대한 외로움, 일상적인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의 외로움, 자신이 가야할 길이 혼자라는 고독감에서 연유되는 외로움,,, 등등
각자의 '외로움에 대한 정의는 다르겠고, 느끼는 바 역시 모두 다를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다양한 시각 속에서도 통용되는 점이 있다면, '타인과 나' 라는 관계입니다.
타인과의 부재, 소통의 엇갈림, 차별화 등이 일상생활에서도 '외로움'이라는 형상으로 나타나 우리 마음을 짓누르고 있고 그런 짓누르는 마음이 심해지면서, 사회의 여러 범죄들(예를 들어, 버지니아 총기 사건)같은 극단적인 현상으로 변모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밑의 준영이의 시놉시스도 그런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살인'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의 마음의 허기를 달래고자 하였고, 그리고 잘라낸 차가운 육신과의 조우로 그런 '타인과 나의 관계에서 오는 모호함'과 '외로움'을 표현하게 됩니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로 영화의 장을 마감하는 것이 좋을 수 있지만, 저는 여기에 개인적인 의견을 보태려 합니다.
사실, 인간은 태어나서 '외로움'을 못 느껴본적이 없을 정도로 그걸 탈피하기 위한 서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지껄이셨던 아리스토텔레스 옹의 말씀을 빌려온다면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태초의 인간의 동기도 '외로움'이 한 몫 했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그런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외로움'이 과거와 다른 현시대의 삭막한 환경으로 인하여 '광기'로 변하게 되는 근본적인 과정에 대해 풍자적으로 표현(블랙 코미디)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삭막한 환경은 우리가 늘 겪는 일상적인 것이어야 겠지요.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도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무마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외롭다, 외롭다' 생각하면 끝도 없는게 이 '외로움'이지만 단지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괴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난 외롭지 않다"라고 큰소리치셨던 모 학우의 말도 일리가 있는게 '외로움'이 꼭 괴로움으로 직결되는 걸까요? 즉, 이 '외로움'이라는 단어도 우리 마음가짐에 따른 파생물인 셈이지요.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 '외로움'을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이 살인자는 타인 보다 자신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래서, 타인의 부재, 소통의 문제에 대해서 지금까지 앉아서 지켜봤다면, 이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문제를 해결하러 떠납니다. 즉, 준영이의 시놉 마지막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희망'으로 승화시켜야합니다.
전 이 시놉시스의 주인공을 단지 '한 극단적 살인자' 보다는 평범한 우리들의 '마음'을 투영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이 것을 씁쓸한 웃음과 위트로 쪼아낸 국물에 집어넣어 재미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자세한 시놉은 담에...
ps. 고상한 척 눈팅만 하지 마시고 개인적 의견을 남겨주시면, 이 글을 쓴 제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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